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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가다 - 실크로드

2017.06.14 10:08

실크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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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중국 중원(中原) 지방에서 시작하여 하서주랑(河西走廊)을 가로질러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북 가장자리를 따라 파미르고원, 중앙아시아 초원, 이란 고원을 지나 지중해 동안과 북안에 이르는 총 길이 6,400의 상업교역로를 일컫는다. 선진시기(先秦時期) 중국과 동서양 교류를 연결하던 통로가 이미 존재했었지만, 서한(西漢) 시기에 서역을 통해 실크가 서방세계에 정식으로 전해졌기 때문에 실크로드의 정식적인 기원은 서한 장건(張騫)의 서역 개척으로 본다.

  둔황-명사산 낙타행렬1.jpg

명사산 낙타행렬

비단길(Silk Road)란 이름이 처음 사용된 것은 1877년 독일의 지질학자겸 지리학자인 리히트호펜(RichthofenFerdinand von18331905)이 그의 저서 <중국(中國)>에서 기원전 114년에서 서기 127년 사이 중국과 중앙아시아, 중국과 인도 사이에 실크무역을 매개로한 서역 교역로를 실크로드라고 명명하면서부터 학술계와 대중들이 사용하게 되었다.

둔황-막고굴 7층 미륵상.jpg

돈황 막고굴

그 후, 독일의 역사학자인 헤르만이 20세기 초 출판한 <<중국과 시리아 간의 고대 실크로드>>란 책에서 새롭게 발견된 유물과 고고학 자료를 근거로 실크로드가 지중해 서안과 소아시아까지 외연이 확장된 것으로 보아 중국 고대에 중앙아시아를 거쳐 남아시아, 서아시아 및 유럽, 북아프리카까지 통하는 육상무역교류의 통로인 것으로 그 의미를 명확히 했다.

  하서주랑.jpg

하서주랑

협의의 실크로드는 육상실크로드를 의미하고 광의의 실크로드는 육상과 해상의 두 교역로를 의미한다. 육상실크로드는 서한 시기 장안(지금의 서안)을 기점으로 하여 하서주랑(河西走廊)을 거쳐 돈황(敦煌)에 이르러 남북 두 갈래로 나뉘어 진다. 남로(南路)는 돈황루란국(樓蘭)우전국(于闐)사차(莎車)파미르고원대월지(大月氏, 지금의 아프카니스탄)안식국(安息, 이란 북부지역에 있는 파르티아국)조지(條支, 지금의 지중해 연안 또는 보스니아만 일대)대진(大秦)에 이르고, 북로(北路)는 돈황교하(交河, 서역 36국 가운데 하나인 차사전국의 도성)귀자(龜玆,쿠치나왕국으로 고대 서역 국가 중 하나)소륵(疏勒, 슈리크국으로 서역 36국 가운데 하나)대완(大宛, 현 페르가나 분지로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키스탄 3국의 경계지역)안식대진에 이른다.

 화청지-양귀비 목욕하든곳.jpg

서안 화청지

중앙 부분은 둔황 서쪽에서 파미르 고원 동쪽까지 이며, 이 길은 타클라마칸 사막에 가로막혀 사막 남쪽(쿤룬산맥-昆侖山脈) 과 사막 북쪽(천산산맥-天山山脈) 남쪽으로 가는 두 길로 나뉜다. 서쪽 부분도 중앙 부분과 마찬가지로 남·북의 두 갈래가 있어서 남로는 파미르 고원의 쿠시쿠르간에서 서쪽으로 쿠샨 왕국에 이르고, 여기서부터는 뱃길로 천축(인도의 옛 이름)에 들어갈 수 있다. 인더스 강을 따라 내려가 아라비아 해와 홍해로 들어가서 지중해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까지 이른다.

  천불동 계곡.jpg

천불동계곡


중국에서는 비단, 칠기, 도자기 같은 물품과 양잠, 화약 기술, 제지 기술 등이 서역으로 건너갔으며, 특히 종이 만드는 기술이 서역으로 건너가서 중세 유럽의 암흑기를 밝혀 인쇄술 발달과 지식 보급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후 돈황을 비롯한 4군데에 요새를 세워 교역로를 보호하면서 부터 서역으로 통하는 실크로드가 훤히 뚫렸으며 1년에 5~10번씩 장사꾼들이 오갔다.

장건이 서역을 처음 개척한 이래 중국의 역대 왕조는 중앙아시아 및 서아시아 여러 나라와 빈번히 교류를 하였다. 그러므로 실크로드는 상업적인 면뿐만 아니라 동서 문화의 교류라는 면에서 역사적으로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한편 불교도 이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에 유입된 후로 많은 스님들이 경전을 구하러 실크로드를 따라 인도로 들어갔고, 인도의 승려들도 경전을 가지고 중국으로 많이 들어왔다. 1300여 년 전 혜초스님도 한 마리의 낙타에 몸을 싣고 고행의 길을 다녀온 기록이 있다. 중국 불교의 발전에도 인도와 중국을 연결시켜준 실크로드는 중요한 매개체였다.

 

지금은 도로사정이 많이 좋아져 자동차로 이동하기는 편하지만 고비사막의 이상기후와 높은 고온에 시달릴 수도 있다. 특히 사진촬영을 목적으로 실크로드 여행을 원한다면 가능한 현지 전문가이드와 전문사진가와 함께 동행하여 풍부한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번역: 우현숙/ 사진: 은효진(다큐멘터리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