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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가다 - 강소성 주장

2015.02.27 05:56

강소성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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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를가다

중국 강소성 주장(周庄)

중국 제1의 수향고진, 동양의 베네치아라 부르는 주장은 상해와 소주, 항주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소성 곤산시에 속한다. 소주에서 약 40km, 상해에서 약 70km 거리에 위치. 옛 이름은 정풍리, 동리, 주장, 루직, 서당, 오진, 남심과 함께 강남 6대 고진 중 하나. 북송 (원우년간 1086) 주적공이 불교를 숭상하여 13헥타르 부지의 땅에 자신의 사재로 전복사를 지으니 백성들이 그 은덕을 기려 부지 전체를 주적공의 성을 본 따 주장(周庄)이라고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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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년 금이십 상공이 송() 고종(高宗)을 따라 이곳으로 옮겨오면서부터 사람들이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원대 중엽에 강남의 대부호인 심만삼의 아버지 심우가 주장 동쪽에 위치한 동택촌에 주거지를 마련하면서 상업도 함께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주장은 부안교를 중심으로 하여 진()이 형성되었고, 명대에 이르러 그 영역이 더욱 확장되었다. 청대 이르러 민가들이 더 조밀해졌고 상업중심지도 더 커졌으며, 이때까지도 이름은 정풍리로 불렸다. 강희황제 즉위 이후 정식으로 주장진으로 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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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이 상업이 융성한 진으로 발전한 데에는 심만삼의 역할이 컸는데, 그는 서쪽으로는 경항대운하 동쪽으로는 류하와 연결되는 동강의 탁월한 접근성을 이용해서 무역을 발전시켰다. 이때부터 주장은 식량, 비단 및 수공업 상품의 집산지 및 교역 중심지가 되어 수공업과 상업에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지금도 주장의 대표적 상품으로 비단, 자수, 대나무 용품, 각로(脚爐), 바이지우(白酒)를 꼽는다.

   

주장의 대표적 명소로는 선방(船舫), 전복강사(全福講寺), 심청(沈廳), 쌍교(雙橋), 남호(南湖), 부안교(富安橋),장청(張廳)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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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강사(全福講寺)송 원우년간(1086) 주적공이 백현호에 있는 자신의 사택을 절로 만들었다. 후에 역대로 규모가 커져 유명한 사원이 되었다가 1950년대 곡식 창고로 개조되기도 했다. 주장진 여행업의 발전에 맞추어 1995년에 중건되어 물과 반영이 혼합된 아름다운 사찰공원으로 만들어져 있어 가볼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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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沈廳) 심만삼의 후예 심본인이 청 건륭7(1742)에 지은 건물로 100여 개의 크고 작은 방들이 100여 미터 길이에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심청은 전면에 수장문과 부두가 있고, 가운데 접객과 혼례 등을 치를 수 있는 차청과 정청, 후면 생활공간의 세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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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교(富安橋) 1355년에 지어진 부안교는 뒷날 심만삼의 동생인 심만사가 자비를 내어 새로 중건하여, 아치형 다리로 만들고 부귀와 평안을 비는 의미로 부안교라고 개명했다. 부안교는 다리 한 량과 누각이 결합된 독특한 양식을 띄고 있으며 교신은 금산화강암으로 세밀한 공정을 거쳐서 제작하였으며, 난간과 계단은 무강석을 쌓아 만들었다.

   

장청(張廳)원 이름은 이순당으로 명대에 세워졌다. 청대 초기에 장에게 양도되어 옥연당으로 개명했는데, 속칭 장청이라고 부른다. 방이 70여 칸, 면적은1800, 섬세하고 아름다운 조각이 특징을 이루고 있다.

 

                                                                                                               은 효 진 (다큐멘터리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