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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럼 - 조영순 "데포르메의 한계"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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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종로구 인사동 116

02-734-7555

 

 

조 영 순

- ‘데포르메의 한계 -

일시: 2020. 3. 11 () - 3. 17 ()

장소: 토포하우스

작가: 조영순

  image01.png

 

작가 노트 : 과거로의 회귀

 

바위는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의 표상으로 여겨진다. 나의 작업에서 바위는 외로운 시간을 견디어 내는 절친한 벗이자 의지의 대상이다. 더 나아가 바위는 내게 삶의 의지의 응결체이자 절대 흔들리지 않는 의지의 표상으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바람을 담는다.

아버지는 내가 10살 때 운명 하셨다. 아버지의 부재로 촉발된 변화된 환경과 그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했던 냉정한 현실을 유년기에 겪으면서 외로움은 삶 그 자체로 온전히 전해졌다. 아버지와의 비어버린 시간은 뒷산을 올라 강가를 거닐며 바위를 쉼터 삼아 보내는 것으로 채워졌다. 변함없이 내어주는 친근한 쉼터로서의 바위는 시각적으로 또 촉각적으로 다가왔고, 심리적 안정도 되찾게 해준 친숙한 환경이 되어갔다. 친숙함은 관찰로 이어졌고 드로잉의 대상이 되었다. 그 표면은 거칠고도 부드러웠으며 오랜 시간이 묻어나는 흔적들은 다채로운 색감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렇듯 나의 손은 유년시절 드로잉을 하며 꿈을 키우는 실가닥과 같은 희망이자 나의 우울한 자아를 긍정의 에너지로 전환하고 생성해내는 아버지와 같은 원천수였다.

나의 작업에 투영시킨 바위는 집념을 갖고 삶의 고행을 침묵으로 일관하는 자연의 섭리를 모두 흡수하는 극복의 의지의 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위 주의환경에 의한 풍경은 마치 바위가 살아 숨 쉬는 듯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고 관조하였다. 또한 빛과 그림자로 변화무쌍하게 변화되는 외부환경을 추상으로 표현하였으며, 원색계열을 사용함으로써 에너지가 발산되도록 재해석 하였다. 그리고 추상적 이미지에 색감을 넣어 형상이 서로 융합되어 면 분할 면적을 넓게 표현되도록 하였다. 나의 기분에 따라 긍정적일 때는 강열한 색채를 사용하였고, 우울하거나 가라앉을 때는 좀 더 분열적으로 해체되어 보이도록 하였다. 사계절을 함께 수반하는 것에 따라 바위도 모든 생물처럼 살아간다는 것을 인식하였으며, 감정이나 세월의 풍파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비정함 속에 외부환경을 견뎌내는 흔적들은 표면의 질감으로 양상 되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바위는 과거로부터의 회귀가 영원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손의 형상을 재현으로 표현한 것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나와 아버지를 연결해주는 인연의 끈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작업은 손의 이미지를 재현하고 기하학적 도형과 형상을 추상화 해 나가고 있으며, 동적인 추상회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향후 나의 작품에서 아버지의 모습은 죽음뒤에도 세 번을 더 본 모습에서도 많은 연결성이 대두 될 것이다. ‘‘(뽕에 물든 손 그림)작업은 유년시절 과거속의 가정환경에서 비롯된 기억속의 나그리고 현재 의식속에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의식을 갖고 꿈을 향해 가는 또 하나의 컬러 손은 곧 나의 미래이며 희망이다.

 

평론

 

데포르메의 한계- 조영순의 근작들

 

초기작부터 근작에 이르기까지 조영순의 회화 일반은 바위의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다. 바위에 대한 이 화가의 남다른 애착은 유년의 기억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불과 열 살의 나이에 사랑하는 아버지를 여읜 외로운 영혼은 세월의 풍파를 굳건히 이겨내는 바위에 자신의 마음을 의탁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그녀는 동네 근처 바위가 있는 계곡을 찾아 거기서 혼자 오랜 시간을 보냈다.

어느 순간부터 이 화가는 바위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방식에 회의를 느꼈다. 바위 형태나 질감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에 더 이상 만족할 수 없게 됐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 화가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처음부터 바위 자체가 아니라 바위에 투사한 자신의 감정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즉 이 화가의 초기 회화를 추동한 것은 감정이입 충동이었다. 그러니까 조영순이 그린 것은 바위라는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물에 투사된 감정들, 이미지로 주조된 감정들이라고 해야 한다.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 아버지 품에서 느꼈던 따뜻함, 돌을 만지는 손이 느꼈던 촉각적 만족감 같은 감정들이다. 조영순의 회화에는 원근법을 탈피한 단순한 형상들, 원색물감을 캔버스 표면에 떨어뜨리고 문지르는 행위, 이질적인 재료들의 충돌이 매우 두드러지게 됐다. 이로써 조영순의 회화는 어떤 활기를 갖게 됐다. 조영순의 표현을 빌자면 리듬감과 생동감이 충만한 에너지를 발산하는회화가 탄생했다.

반추상 또는 비구상을 추구하는 화가는 대상, 자연을 그리지만 그것을 기계적으로 따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변형하여 그리는 태도를 취한다. 그 변형에 예술의 정수인 창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데포르메(déformer)’회화적 변형을 의미한다. “자연이면서 자연 아닌 것또는 자연 아니면서 자연인 것을 만드는 것이 데포르메의 진수(眞髓)라는 것이다.

조영순의 최근작들에는 추상표현적인 이미지 사이에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된 손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뽕나무에서 열린 오디를 따먹은 물든 손의 이미지는 오디를 잡아당기고 누르고 문지른 손의 행위를 지시, 함축한다. 그것은 지금까지 바위로 대표되는 자연 사물의 데포르메 문제에 열중하던 화가의 관심이 데포르메를 수행하는 행위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단서일 수 있다. 조영순의 근작들은 자연이면서 자연 아닌 것또는 자연 아니면서 자연인 것이라는 데포르메의 진수, 또는 한계를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제시하는 회화이다.

 

홍지석(미술비평, 단국대 초빙교수)

작가 약력

 

단국대 박사수료(이번전시는 박사학위 청구전 임)

개인전 7회 외 그룹전 다수

수원문화재단 작품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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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포르메의 한계, 2019,     120*120, Oil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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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포르메의 본질, 2019,       120*120, Oil on Canvas